[스크랩] 나는 소방관
12/1 동대문 신발상가에서 화재가 발생, 유독가스가 온 사방을 뒤덮고 있다.
소방서를 떠난 지 넉달이 되었지만 아직도 사이렌소리에 귀가 귀울여지고, 구급차 소방차에 눈이 가고, 전화기소리와 벨소리에 깜짝깜짝 놀란다.
아마 김천에서도 저런 화재가 났다면....난 저 검은 연기 속에서 부랴부랴 뛰어다니고 있었겠지
평온한 모습의 공단소방파출소. 구급차와 8호차 11호차 그리고 사다리차
구급차만 1000 여회를 탔었고 장선배와 나는 구급 최고의 파트너였다.
8호차를 탈 때는 모를 듯한 스릴감에 들떳었고
11호차(14호)를 탈 때는, 공기호흡기를 쓰면서 제발 아무 사고가 없기를 빌었다.
2년간 나의 눈물과 나의 땀방울이 스며든 그 곳. 이곳저곳에 남겨둔 나의 흔적들은 파출소가 사라질 때 까지 영원할 것이다.
버스를 타고 갈 때나 기차를 타고 갈 때 항상 보이는 김천소방서. 어느 새 김천이 제2의 고향이 되어버렸다. 저 안에 들어가면 많은 사람들이 반겨줄 것만 같아...마치 고향에 온 것 처럼
뜨거웠던 2005년 여름, 그나마 에어콘이 있어서 다행이었다.
그 전 여름만 해도 샤워를 하루에 네번이나 해야했었지. 아침, 점심, 저녁, 자기 전에...
이젠 합동훈련도 너무 많이 나가서 지겹다. 가장 다이나믹한 폼의 동섭. 사진상엣 오른쪽.
어느 덧 공단 no1의 경방이 되어버렸다,
2004년 7월 29일 뜨거운 땡볕아래 1시간의 구조활동.
아까운 오렌지 주스들
전백중서장 초도방문시..난 찍사.
깐깐한 서장, 그리고 깐깐한 소장. 역시 전임의 장들이 좋아서였을까. 새로운 서장과 소장은 날 항상 피곤하게 했다. 이웃집 아저씨같았던 정석구서장님 그리고 센스만점의 천점용소장님...그리웠다.
이 날을 위해 파출소 청소만 한달을 했었다.
교통사고현장의 대부분은 무릎을 다친다.
하지만 무릎의 연골도 너무 많이 봐 온지라...
그리고 종언이 아저씨
어느 새 내 마음 한구석에 김천이라는 동네가 자릴 잡고 있다. 조용하고 정겨운 동네, 그리고 익숙한 동네. 분홍빛의 도화와 백색의 배화가 핀 어모가는 길, 붉은 노을과 달빛을 보고 달렸던 개령들판, 자연 그대로의 냄새가 묻어났던 지례가는 길 마치 메밀 꽃 필무렵의 한 장면처럼 그 냄새가 아직 내 코끝에 남아있다.